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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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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것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지주회사) 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한국테크놀러지 사장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전체(23.6%)를 넘겼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조 사장은 형인 조현식 부회장(19.3%) 지분을 훨씬 넘어서는 대주주가 됐습니다. 조 회장은 최근 두 아들이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보일 조짐을 보이자 ‘형제의 난’이 발생하기 전에 후계 정리를 서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장남인 조 부회장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누나 조원희씨(지분 10.8%)와 힘을 합치고 기관투자가들의 협조를 구하면 지분 경쟁을 벌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조 사장의 약점도 있습니다. 그는 협력업체로부터 6억원 가량을 받고 관계사 자금 2억63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테크놀러지그룹 지분 7.7%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조 부회장 손을 들어줄 경우 형세는 오리무중입니다.

창업자나 기업 총수가 경영권을 장남이 아닌 자녀에게 물려주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얼마전 유서로 경영권을 확인받은 신동빈 롯데 회장은 2남이었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의 3남이었습니다. 고(故)조양호 한진 회장은 세 자녀에게 골고루 지분을 넘겼지만 사후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산 금호아시아나 GS LS 등은 형제 또는 사촌들간에 경영권을 분점하거나 교대하는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기업인이 가장 냉정하게 자녀를 대하는 때는 경영권 승계를 결정하는 순간일 겁니다. 자식들에 대한 개별적인 애정과 별개로 ‘누가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냐’를 최우선으로 판단합니다. 경영자에게 기업은 자신의 분신과 다름 없습니다. 한 평생의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은 대상이자 한 인간으로서 함양해온 가치관과 세계관을 모두 구현한 유기체입니다. 이 기업을 계속 후대에도 이어가도록 하겠다는 열망은 자녀에 대한 통상적인 애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업인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장 닮았고 경영자로서 갖춰야할 지식과 소양에 대한 교육도 적잖게 시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자녀로의 경영권 승계를 포기하는 기업인도 늘고 있습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처럼 아직도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는 창업자들도 그렇습니다.

대기업 경영권 승계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그로 인해 곤욕을 치러온 여러 2,3세 경영자들의 사례를 봐온 탓이 클 겁니다. 그리고 기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어온 간난신고를 자녀들도 똑같이 경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토로도 적지 않습니다. 차라리 대주주로서 넉넉한 배당을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전제가 있습니다. 훌륭한 전문경영인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대리인의 실패’라는 말이 경영학에 나오겠습니까. 한국에서 기업을 유지하고, 경영권을 원활하게 넘겨주는 것은 정말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도병욱 김보형 기자가 A1,5면에 한국타이어 경영권의 향배를 추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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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누구도 ‘법사위원장 양보’ 목소리 안냈다

더불어민주당이 끝내 국회 상임위원장 18개 자리를 독식했습니다. 미래통합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18개를 다 가져가라”는 통첩을 그대로 이행한 것입니다. 한국 의회정치의 처참한 결말입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이 ‘4·13 호헌조치’를 내놓자 야당과 극력 반발 속에 국회가 공전되자 당시 여당(민정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해버린 폭거 이후 33년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물론 지금의 ‘법사위원장 철회’ 요구를 과거 ‘호헌 철회’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끝까지 양보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 항상 차지한 자리이지 않았습니까. 더욱이 이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야당을 타협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간 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법사위 하나는 양보하자”는 목소리를 단 한명도 내지 않았다는 점도 의아합니다.

18개를 통째로 내던진 통합당의 처사도 온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내준 뒤에 나중에 국정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데, 허망한 얘기입니다. 무슨 힘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까. 개인적으로, 법사위를 내주더라도 비판과 견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차선을 선택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경제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20대 국회때 무산된 각종 경제규제 법안들이 줄줄이 고개를 내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당의 무력화는 한 순간이지만 한번 통과된 법안은 오랫동안 기업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A1,3면에 조미현, 고은이, 김소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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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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