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미쳐버렸다" 막장 설전…'트럼프-머스크' 브로맨스 산산조각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매우 실망했습니다. 우리는 굉장한 관계를 가졌지만, 앞으로도 그럴 지는 모르겠네요.”

5일(현지시간) 정오 무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의 기자회견에서 머스크 CEO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지난달 30일 백악관을 나온 머스크가 트럼프 정부의 감세법에 대해 자신이 인수한 SNS 엑스(X)에 잇달아 비판글을 올리자 공개적으로 둘의 관계가 나빠졌음을 인정한 것이다. 영상이 올라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을 “배은망덕하다”고 쏘아붙였다.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작년 대선은 졌을 것이라고도 했다.
○3700억원 쓴 머스크 “배은망덕”
‘세계 최강권력’ 트럼프 대통령과 ‘세계 최고 부자’ 머스크 CEO의 ‘브로맨스’가 1년 만에 파국을 맞았다. 백악관에서 떠나는 머스크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드나들라는 뜻으로 황금 열쇠를 주며 아름다운 이별을 한 지 불과 6일 만이다.

양측은 하루 종일 온·오프라인으로 설전을 벌였다. “배은망덕하다”는 표현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도 참지 않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SNS 플랫폼 트루스소셜에 감정적인 글을 쏟아냈다. “일론은 점점 더 인내심을 잃게 만들었고 내가 그에게 떠나기를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또 “아무도 원치 않는 전기차를 사도록 강요하는 전기차 의무화 제도를 없앴는데, 그러자 그는 미쳐버렸다!”고 적었다.

또 미국 정부예산을 절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론의 정부 보조금 계약을 끝내는 것”이라면서 “바이든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항상 놀랐다”고 덧붙였다.

머스크의 포스트도 계속 늘어났다. 오후 3시10분 경, 그는 “큰 폭탄을 투하할 때”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태그해서 “그는 엡스타인 파일에 있다. 그게 문서가 공개되지 않는 진짜 이유다. 좋은 하루 되시길, DJT!”라고 적었다. 아동 성매매 등을 일삼다 교도소에서 자살한 제프리 엡스타인의 고객 명단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글을 재게시하며 “예스”라고 코멘트했다. 또 “중도에 있는 80%를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때가 됐느냐”는 설문을 공지사항으로 등록했다. “관세로 하반기에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면서 감세법 외에 다른 영역으로 전선을 넓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주변인들은 일제히 방어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면서도 법안 통과에 방해되지 않도록 “몇달 전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고 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곁을 지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편들었다. 양쪽 모두와 친한 마이크 존슨 하원 의장은 머스크와 통화하면서 갈등을 중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극우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러라고 리조트에 엡스타인 출입을 금지시킨 사람”이라면서 엡스타인 리스트는 사실이 아니라고 옹호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자신의 팟캐스트 '워룸'에 출연해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는 3.5년 남았지만 자신은 40년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감옥 안에서 40년간 일하는 게 어떤지 (머스크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위협했다.
○출범 5개월도 안돼 ‘균열’
한때 ‘퍼스트 버디’라는 별칭까지 붙여가며 막역한 관계를 과시했던 두 사람의 빠른 결별은 출범 5개월도 안 된 트럼프 정부 운영에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갈등의 발원지인 감세안이 의회를 통과하느냐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임기 전체의 성과와 연결된 문제다. 팁 및 초과근로수당 면세 등 자신의 주요 경제공약이 몽땅 들어가 있어서다.

앞서 이 법안이 역겹다고 했던 머스크는 이날 “크고 추악한 법안이냐 아니면 날씬하고 아름다운 법안이냐. 둘중에 하나만 하는 거고 얇고 아름다운 게 정답”이라고 쏘아붙였다. 재정악화와 부채 증가를 그냥 눈감고 통과시키는 의원들은 다 의석을 반납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의원들조차 읽을 시간이 없이” 한밤중에 통과됐다고도 비판했다.

감세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기 위한 최소 인원은 50명(부통령 제외)이다. 3명 이상 공화당에서 이탈표가 나오면 감세법안은 좌초될 수 있다. 머스크는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만 2억7700만달러를 썼던 큰손이다. 그를 위시한 실리콘밸리 일대 테크거물들이 일제히 트럼프 정부에 대한 자금지원을 줄이거나 끊는다면 공화당의 큰 자금줄이 사라진다.

전통적인 자금원이었던 월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있다. 이미 공화당 의원들 중에서는 머스크의 눈치를 보며 중립을 자처하는 이들이 나오는 중이다. 머스크가 장외에서 트럼프 때리기를 지속하면 중간선거(내년 11월)를 치르기도 전에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

미국 증시는 이날 미·중 정상 통화보다 트럼프-머스크 설전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트럼프 정부와의 결별 뿐만 아니라 정부 계약 해지 위협까지 나오면서 테슬라 주가는 한때 17%까지 급락했다가 14.26% 떨어진 284달러선에서 마감했다. 불과 하루만에 206조원어치의 가치가 허공에 사라진 셈이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0.25%, S&P500지수는 -0.53%, 나스닥지수는 -0.83%를 각각 기록했다. 암호화폐로 한데 뭉쳤던 이들이 갈라서면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도 급락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5.06.0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