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보호관세 조치가 미국 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증시에서도 업종별 희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증권가에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때 통상 수혜를 보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주식'이 미국 증시에서 다시 부각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 대형 투자은행 JP모건이 계열사 체이스의 신용·체크카드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월 소비증가율은 1.8%로 직전월(2.8%)보다 둔화됐다. 리처드 셰인 JP모건 분석가는 "소비 증가세가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지난달 10~17일 자사 신용·체크 카드 고객의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총 사용액이 전년 동기 대비 0.7% 줄고, 항공사는 10%, 백화점은 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 중앙은행(Fed)이 지난 4일(현지시간) 내놓은 '6월 경기 진단 보고서(베이지북)'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관세 정책은 기업의 투자와 소비자 지출을 뚜렷하게 줄이고 있다.
Fed는 "이전(4월) 보고서 이후 경제활동은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전반적으로 경제전망은 이전 보고서와 비교해 약간(slightly) 비관적이고 불확실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나눠 담당하는 12개 권역 가운데 경제활동이 소폭 증가한 곳은 3곳에 그친 반면 6곳은 경제활동이 다소 감소했다고 밝혔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이 소비자 물가에 반영되는 시차를 보면 약 1~3분기가 소요된다"며 "따라서 4월부터 부과된 관세는 올 3~4분기에 소비자물가에 가장 뚜렷하게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에서 연체율이 급격히 늘어난 점도 금융가를 불안케 하는 요인이다.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학자금 대출 연체가 전조 현상처럼 나타나서다.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학자금대출의 90일 이상 연체율은 지난해 4분기 0.8%에서 올해 1분기 8.04%로 폭등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고려해 학자금 부채 상환 유예기간을 2023년까지로 지정했고, 신용점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완충기간'은 지난해 9월까지였다. 이후부터 상환하지 못한 연체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학자금 대출 연체가 금융가를 긴장케 하는 건 '소비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올해부터 학자금 대출 상환을 시작하는 이들은 매달 총 10억~30억달러(1조3500억~4조600억원)를 부채 상환에 써야 한다. 그만큼 가계소비에 쓸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모건스탠리는 이에 따라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0.1%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준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책 지원으로 가려졌던 학자금 대출 부실화, 즉 그림자 연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연체와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증가함에 따라 연간 최대 630억달러(약 85조원)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선 경기둔화 그림자가 나타나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서 외식, 여행 등 재량소비 대신 저가 필수품 수요 증가 등 '가성비 소비'가 다시 뜰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증시 투자 시에도 이를 고려한 투자전략이 바람작하다는 조언이다.
박윤철 iM증권 연구원은 "소비재 기업의 경우 관세로 인한 마진압박 부담에 직면할 수 있어 올 하반기엔 수익성 훼손이 나타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의 경우 지출부담이 높은 외부활동 대신 실내 콘텐츠에 주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iM증권에 따르면 실내활동 관련 수혜주로는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 △게임주 △배달음식 관련주 등이 꼽혔다. 또 소비둔화에 따른 마진 압박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일 수 있어 자사주 매입, 배당 등 주주환원 테마가 있는 종목들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